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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안강읍의 회화나무   (천연기념물 제 318 호)  
  월성안강읍의회화나무 소 재 지 : 경북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1428외 3필

회화나무는 모양이 둥글고 온화하여 중국에서는 높은 관리의 무덤이나 선비의 집에 즐겨 심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이 들여와 향교나 사찰 등에 심었다. 특히, 회화나무는 활엽수 중 공해에 가장 강한 나무로 가로수나 공원수로도 이용된다. 월성 안강읍의 회화나무는 높이 17m, 둘레 5.9m로 줄기의 많은 부분이 상해서 나무의 모습이 좋지 못하다. 나무의 나이는 약 400년으로 알려져 있으나, 약 600년 전인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이 마을에 살던 젊은이가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전쟁터로 나가면서 이 나무를 심어놓고 부모님께 자식처럼 키워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 후 젊은이는 장렬하게 전사하였고 부모는 아들의 뜻대로 이 나무를 자식같이 여기며 가꾸어 오늘의 모습에 이르렀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에 이 나무 앞에 모여 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평화와 풍년을 기원한다고 한다. 월성 안강읍의 회화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살아 왔으며, 민속적·문화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지정면적 : 1주(314㎡)
지 정 일 : 1982-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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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안강읍의회화나무
 
   
  전문 내용
 
  수령(樹齡)은 400여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7m, 가슴높이 둘레가 5.9m, 뿌리 근처 둘레가 6.8m, 가지 밑의 높이가 2.1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쪽이 12m, 서쪽이 17.8m, 남쪽이 19m, 북쪽이 9m이다. 마을을 지나가는 도로 중앙에서 자라며 2m 정도 올라가서 2개로 갈라졌다. 남쪽 가지는 다시 2개로 갈라져서 동북(東北)쪽으로 자랐다. 서남(西南)쪽 가지 밑에 우물이 있다. 가까운 곳에 흥덕왕릉(興德王陵)이 있다. 흥덕왕(재위(在位) 826-836)은 신라(新羅) 제42대 왕이며 정목왕후(定穆王后)와 같이 합장되어 있다고 한다. 나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여 온다. 고려 공민왕 시절에 김영동이란 젊은이가 이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당시(當時) 북으로는 홍건적(紅巾賊)이 침입(侵入)하고 남으로는 왜적(倭賊)이 침입(侵入)하여 양민(良民)을 학살하고 노략질을 일삼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19세가 된 그는 출전(出戰)할 결심(決心)을 하고 이 나무를 심은 다음 부모(父母)님께 하직인사를 하며 "소자(小子)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이 나무를 자식으로 알고 잘 가꾸어 달라"고 하였다. 그는 왜구와 싸우다가
전사(戰死)하고 부모(父母)는 이 나무를 유언(遺言) 그대로 잘 가꾸었다. 따라서 나무의 수령(樹齡)은 이러한 전설(傳說)을 토대로 하게 되면 600년이 된다. 부락(部落)에서는 음력 정월 보름날 육통(六通) 1·2·3리(里)의 주민(住民)이 이 나무 앞에 모여서 동제(洞祭)를 지내며 새해의 풍작(豊作)과 행운(幸運)을 빌어 왔다. 이때에 제주(祭主)는 마을에서 가장 정결(淨潔)한 사람을 뽑아서 제례(祭禮)를 올리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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